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막내 딸 아이가 용돈을 차곡 차곡 모아서 화장품을 샀다. 누군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고 깔깔 거리고 웃으며 가족에게 행복을 주는 아이입니다. 이런 아이가 학교에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문학 작품을 배우고 오던 날, 오래 된 책에서나 등장하던 이야기가 실제로 본인에게 일어났다.
조세희 작가가 1976년에 쓴 명작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그곳에 실제로 상대원 공단이 등장한다. 그 때 이야기가 48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 같이 일어날 줄이야.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이 어린 아이가 살고 있는 성남의 상대원 지역에서 재발 되었다. 청계천에서 밀려 밀려 성남으로 들어와 판잣촌에서 살아 가던 소시민들의 품이고 고향인 성남 상대원 지역이다. 주변에는 이미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지만 이들이 사는 낡고 오래 된 빌라 촌에는 가난과 소외만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곳을 배경으로 공약을 내고 자신들을 뽑아 달라고 넙죽거리며 절을 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가지만 당선된 다음에는 우선순위에 전혀 들어 가지 않는다.
그곳에 1971년 세워진 성안교회가 있다. 이웃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한 철저히 서민적인 교회이다. 가난 때문에 공부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오랜 시간 방과후 학교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변함없이 반찬을 만들어 방문하고 어르신들을 묵묵히 섬기는 교회이다. 특별히 잘난 사람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가난한 군상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사랑하는 500명 되는 동네 교회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재개발과 도시정비 사업이 이 서민 지역에 이야기 되더니 하나 둘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한 집 두 집 비어 가기 시작했다. 교회는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이웃의 등대가 되고 있었다. 그런 교회를 용역들이 급습하여 예배당과 교육관을 폐쇠시키고 목사와 성도들에게 상해를 입혔다.
아이가 살고 있던 목사의 사택은 겨울이면 바람이 오래 된 창틀로 들어 오는 열악한 공간이지만 사랑하는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깔깔 거리며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철저하게 접근이 금지 되었다. 교복 하나 꺼내지 못하고 옷 가지 하나 꺼내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빼앗겨 버렸다. 최소한의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속하는 잘사는 나라 대한민국, 한류로 세계에서 열광스런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 났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것도 2024년에 말이다.
교회가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성도들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공간과 건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배당 공간과 교육관 공간을 합한 땅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을 원하는 것이다. 아이가 마음 편하게 교복을 입고 기쁜 걸음으로 학교로 달려 갈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아이가 인권이 소중하게 지켜 질 수 있다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면 좋겠다. 아이가 살고 있는 땅을 갈아 엎고 수십 층 아파트를 지으면 뭘 하자는 것인가.
아이의 소망이 사라지고 꿈이 좌절 되면 조국의 미래는 어두워 지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주 쉽게 말한다. 너희가 우리의 미래라고. 너희가 이 세상을 위한 약속이라고. 어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른들은 얼마나 더 비겁하게 꾸역꾸역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 가야 하는가! 최소한 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 가야 하는 것이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아이의 인권이 유린되지 않고 책 속에서 올바르다고 공부했던 민주주의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이 모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고 양심이 아닐까. 오래 전 마르크스가 외치던 구호가 생각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 외침이 “이 땅의 어른들이여 부끄러워 하라”라는 외침으로 다가 온다.
뉴스공방0 이동철 기자 (24시간 동행 취재)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막내 딸 아이가 용돈을 차곡 차곡 모아서 화장품을 샀다. 누군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고 깔깔 거리고 웃으며 가족에게 행복을 주는 아이입니다. 이런 아이가 학교에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문학 작품을 배우고 오던 날, 오래 된 책에서나 등장하던 이야기가 실제로 본인에게 일어났다.
조세희 작가가 1976년에 쓴 명작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그곳에 실제로 상대원 공단이 등장한다. 그 때 이야기가 48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 같이 일어날 줄이야.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이 어린 아이가 살고 있는 성남의 상대원 지역에서 재발 되었다. 청계천에서 밀려 밀려 성남으로 들어와 판잣촌에서 살아 가던 소시민들의 품이고 고향인 성남 상대원 지역이다. 주변에는 이미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지만 이들이 사는 낡고 오래 된 빌라 촌에는 가난과 소외만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곳을 배경으로 공약을 내고 자신들을 뽑아 달라고 넙죽거리며 절을 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가지만 당선된 다음에는 우선순위에 전혀 들어 가지 않는다.
그곳에 1971년 세워진 성안교회가 있다. 이웃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한 철저히 서민적인 교회이다. 가난 때문에 공부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오랜 시간 방과후 학교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변함없이 반찬을 만들어 방문하고 어르신들을 묵묵히 섬기는 교회이다. 특별히 잘난 사람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가난한 군상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사랑하는 500명 되는 동네 교회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재개발과 도시정비 사업이 이 서민 지역에 이야기 되더니 하나 둘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한 집 두 집 비어 가기 시작했다. 교회는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이웃의 등대가 되고 있었다. 그런 교회를 용역들이 급습하여 예배당과 교육관을 폐쇠시키고 목사와 성도들에게 상해를 입혔다.
아이가 살고 있던 목사의 사택은 겨울이면 바람이 오래 된 창틀로 들어 오는 열악한 공간이지만 사랑하는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깔깔 거리며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철저하게 접근이 금지 되었다. 교복 하나 꺼내지 못하고 옷 가지 하나 꺼내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빼앗겨 버렸다. 최소한의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속하는 잘사는 나라 대한민국, 한류로 세계에서 열광스런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 났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것도 2024년에 말이다.
교회가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성도들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공간과 건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배당 공간과 교육관 공간을 합한 땅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을 원하는 것이다. 아이가 마음 편하게 교복을 입고 기쁜 걸음으로 학교로 달려 갈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아이가 인권이 소중하게 지켜 질 수 있다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면 좋겠다. 아이가 살고 있는 땅을 갈아 엎고 수십 층 아파트를 지으면 뭘 하자는 것인가.
아이의 소망이 사라지고 꿈이 좌절 되면 조국의 미래는 어두워 지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주 쉽게 말한다. 너희가 우리의 미래라고. 너희가 이 세상을 위한 약속이라고. 어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른들은 얼마나 더 비겁하게 꾸역꾸역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 가야 하는가! 최소한 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 가야 하는 것이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아이의 인권이 유린되지 않고 책 속에서 올바르다고 공부했던 민주주의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이 모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고 양심이 아닐까. 오래 전 마르크스가 외치던 구호가 생각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 외침이 “이 땅의 어른들이여 부끄러워 하라”라는 외침으로 다가 온다.
뉴스공방0 이동철 기자 (24시간 동행 취재)